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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의 유래 - 역대 임금들의 이야기

by yesG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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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의 개관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의 실록을 통칭하는 것으로서 태조강헌대왕실록으로부터 철종대왕실록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역대 조정에서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편찬한 것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실록에는 고종태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두 실록은 1927부터 1932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것으로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과 황제, 황실의 동정에 관한 기록들에서 왜곡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엄격한 실록 편찬 규례에도 맞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고종, 순종실록의 역사는 참고하거나 인용하는 데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실록'으로 약칭하기도 하며, 이들 중에는 <연산군일기>나 <광해군일기>와 같이 ‘일기’라고 한 것도 있지만, 그 체제나 성격은 다른 실록들과 똑같습니다. 대부분 왕대마다 1종의 실록을 편찬하였지만, <선조실록>, <현종실록>, <경종실록>은 후에 수정 실록 혹은 개수실록을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또 <광해군일기>는 인쇄되지 못한 정초본과 중초본이 함께 전하는데, 중초본에는 최종적으로 산삭한 내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많은 정보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대부분 목활자로 인쇄한 간본으로 되어 있지만, 정족산본의 초기 실록 및 두 본의 광해군일기는 필사본으로 남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일반인들이 읽기 어려웠으나, 1968년부터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1972년부터는 민족문화추진회가 국역사업을 시작하여 1993년에 완료했습니다. 이 국역본은 신국판 413책으로 간행되었으므로 이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를 보다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하여 1995년에 서울시스템(2003년에 솔트웍스로 개칭) 한국학데이터베이스연구소가 전질을 전산화하여 CD-ROM으로 제작 보급했습니다. 한편, 북한의 사회과학원에서는 적상산본 실록을 이용하여 1975년부터 1991년까지 국역사업을 추진하여 총 400책의 국역실록을 간행했습니다. 오대산본 실록의 경우 일제 강점기 동경제국대학으로 반출되었다가 대부분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었으나 일부(27책)가 이후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어 국내에 잔존해 있었으며, 일본에 남아있던 실록이 2004년(47책)과 2018년(1책) 환수됐습니다. 또한 2017~2018년 조사 결과, 정족산본 7책, 적상산사고본 4책과 함께 어람용으로 제작된 봉모당본 6책이 추가 확인됐습니다. 현재 남한에서 소재가 파악된 조선왕조실록은 총 2,219책으로서, 이 가운데 정족산본 1,187책과 낙질 및 산엽본 99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밖에 태백산본 848책이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 오대산본 75책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적성산본 4책과 봉모당본 6책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년 <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연도[미상][미상]조선왕조실록초

조선왕조실록 편찬의 유래

실록은 황제나 국왕과 같은 제왕이 조정에서 일어나거나 보고되는 일들을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로서, 일종의 연대기에 해당합니다. 그 기원은 황제의 측근에서 매사를 기록하던 한대의 기거주에서 시작되지만, ‘실록’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은 6세기 중엽 양 무제 때 주흥사가 편찬한 <황제실록>이 처음입니다. 이후 당, 송 시대를 거치면서 그 체제가 정비됐습니다.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지속적으로 실록을 편찬하였으나, 중세 이전의 것으로는 당대에 한유가 편찬한 <순종실록>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근세의 실록인 <명실록> 2,909권과 <청실록> 3,000여 권이 전하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처럼 내용이 풍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초기(연대 미상)부터 사관(후에 예문춘추관으로 개칭)을 설치하고, 실록을 편찬했습니다. 태조∼목종의 7대에 걸쳐 차례로 편찬된 실록은 1011년(현종 2) 거란족의 침략으로 궁궐•사관과 함께 소실되기도 햇습니다. 이후 현종이 1022년(현종 13) 황주량, 최충, 윤징고등에게 <칠대실록>을 복원하도록 명하여 1034년(덕종 3)에 완성했습니다. 이를 이어 후대의 왕들도 실록을 편찬하였고, 조선왕조도 고려의 전통을 계승하여, 1398년(태조 7)에 공민왕 이후 고려말기 왕들의 실록을 편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여러 차례의 전란을 겪으면서 모두 소실되고 전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실록은 <태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왕조의 실록들 뿐입니다. <태조실록>은 1408년(태종 8)에 태조가 죽자, 태종이 편찬토록 명하였으나 하륜 등이 3대가 지난 후에 편찬할 것을 주장하여 중지되었다가, 1410년(태종 10)부터 춘추관에서 편찬을 시작하여 1413년(태종 13)에 완성됐습니다. 뒤이어 세종대에는 <정종실록>과 <태종실록> 이 편찬됐습니다. <정종실록>은 1426년(세종 8)에 변계량 등에 의해 완성되었고, <태종실록>은 1431년(세종 13)에 완성됐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도전의 난과 박포의 난에 관련된 기사에 착오가 있어 1442년(세종 24)에 <태조실록> 과 함께 부분적으로 수정됐습니다. 이들 실록은 처음에는 2벌씩 작성되어 서울의 춘추관과 충주사고에 소장했습니다. 그러나 멸실의 염려 때문에 1439년(세종 21)에 사헌부의 건의로 2벌씩을 더 등사하고 전주와 성주에 사고를 신설하여 봉안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조선초기의 사대사고입니다. 이후 조선의 왕들은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대대로 실록을 편찬했고, 편찬이나 관리에 엄격한 규례를 적용했습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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